‘부산 돌려차기’ 피의자 얼굴·실명 유튜브 공개… 피해자 “‘사적 제재’란 말 너무 억울”

‘부산 돌려차기’ 피의자 얼굴·실명 유튜브 공개… 피해자 “‘사적 제재’란 말 너무 억울”

‘부산 또래 살인’ 사건 피의자 정유정(여·23·구속) 씨 신상 공개를 계기로 흉악범에 대한 신상 공개 여론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한 유튜버가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이모(30) 씨의 얼굴과 실명 등 개인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이는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것이어서 ‘사적 제재’ 논란이 예상된다.사건사고 전문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는 2일 ‘돌려차기남 ○○○’이라는 제목의 9분6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이 씨의 사진과 실명, 생년월일, 출생지, 키, 혈액형, 신체 특징 등이 담겼다. 또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이 씨의 전과 기록도 상세하게 나열됐다.채널 운영자인 ‘카라큘라’는 영상에서 고심 끝에 이 씨의 신상 공개를 감행했다고 설명했다. 카라큘라는 "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법의 처벌을 받을 수 있고 극악무도한 범행을 벌인 가해자의 보복 범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유튜버가 무단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도를 넘은 사적 제재 행위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신상정보를 공개함으로써 피해자가 평생 느낄 고통과 두려움을 분담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전과 18범의 가해자는 사회에 나오면 안 된다. 왜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은 피해자의 몫인가. 제가 이번 일로 수많은 대중에게 비판의 대상이 될지언정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겠다"고 했다.카라큘라의 말대로,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피의자 신상 공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피의자 신상 공개 제도는 2009년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으나, 요건이 엄격하다.현행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 4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될 경우 피의자의 얼굴 및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각 지방경찰청에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심의한다.피의자 신상 공개에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신상 공개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다.그러나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인 A씨는 이번 영상에 출연해 가해자 이 씨 신상 공개 필요성을 직접 설명했다. A씨는 "(이 씨 신상 공개는) 사실 제게는 필요 없는 일이다. 저는 이미 가해자에 대해 알고 있다. 그 사람이 민망하라고, 조금이라도 벌을 더 받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피해자의 심리는 ‘다른 사람이 안 당했으면 좋겠다’라는 게 제일 크다. 반대하는 분들이 ‘사적 제재’ ‘사적 보복’을 얘기할 때마다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A씨는 "경찰에 청원을 넣었더니 이미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돼 경찰은 권한이 없다더라. 그래서 지방검찰청에 요청했더니 2심 재판 중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며 "도대체 언론의 주목을 얼마큼 받아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열리는 걸까,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공분하는데도 어느 지표가 돼야 움직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이 씨는 지난해 5월 22일 부산 부산진구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 A씨를 쫓아가 머리를 발로 차는 등 마구 폭행한 혐의(살인미수)로 재판에 넘겨졌고, 그해 10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검찰은 지난달 31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DNA 재감정 결과 피해자가 입고 있던 청바지 안쪽 허리와 허벅지 부위 등에서 이 씨 유전자가 검출됐다"며 기존 살인미수 외에 성폭행 혐의를 추가 적용해 징역 35년을 구형했다.이 사건의 2심 선고공판은 다음 달 12일로 예정돼 있다.오남석 기자

NEW
당신이 놓친 주요 뉴스
가장 많이 읽은 기사

ADVERTISEMENT

opinion

More
오피니언 리스트

politics

전현희, 감사원에 맞불…“명예훼손으로 법적 조치하겠다”

전현희, 감사원에 맞불…“명예훼손으로 법적 조치하겠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감사원에 대해 "감사위원회의 의결 내용을 왜곡한 문자를 언론에 발송했다"며 "불문 결정과 관련된 사안이 외부에 공개될 경우 모든 관련자들에게 명예훼손과 관련 법령 위반에 대해 강력히 법적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전 위원장은 3일 오전 감사원이 언론에 보낸 문자메시지와 관련,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감사원장을 제외한 감사위원 6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관련 증거를 검토, 권익위원장 개인 의혹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라는 뜻의 ‘불문’ 결정을 내린 의결 내용을 왜곡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감사원 사무국은 감사위원회에서 불문 결정한 내용을 감사 결과 보고서에 담을 수 없다는 감사원 법 관련 원칙을 훼손할 것임을 예고한 불법적 내용을 담은 명예훼손성 문자"라고 비판했다. 전 위원장은 "특히 유권 해석 부분은 감사원장과 사무총장 등 감사원 모든 관련자들이 현재 공수처에 고발돼 수사 중에 있는 사안"이라며 "이러한 추미애 장관의 유권 해석 관련 허위 제보·증언을 근거로 한 조작 감사 의혹에 대해 감사원 사무국의 일방적 주장이 외부에 그대로 공개될 경우 명예훼손 등 관련 법령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앞서 이날 오전 감사원은 언론에 문자를 보내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해 감사원 감사위원 6명 만장일치로 ‘불문 결정’했다는 일부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는 지난 1일 회의를 열고 사무처가 올린 권익위 감사보고서 내용을 최종 심의·의결했다.일부 언론은 사무처가 전 위원장에게 문책 등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한 내용에 대해 최재해 감사원장을 제외한 감사위원 6명이 만장일치로 최종 불문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불문은 특정 행위가 위법·부당하다고 문제 삼기 어려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뜻이다.감사원은 문자메시지에서 "감사원 감사위원회의는 제보 내용을 안건별로 심의해 권익위원장과 권익위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해 권익위원장에게 기관주의 형태로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가 결국 권익위 수장인 전 위원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감사원은 또 "위원장 관련 확인된 사실 중 일부는 위원장이 정무직이고 이미 수사 요청된 점 등을 고려해 조치하지 않으나, 감사보고서에 관련 내용 등은 서술될 예정"이라고 했다.감사원은 이번 감사 도중 2020년 9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에 대한 권익위의 유권해석 과정에서 전 위원장이 부적절하게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바 있다.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혐의를 부인하며 ‘감사원의 직권남용 수사의뢰’라고 주장해 왔다.이예린 기자

More
정치 기사 리스트

economy

90만 원대 ‘이부진 백’ 매장 국내에 문 열었다

90만 원대 ‘이부진 백’ 매장 국내에 문 열었다

‘이부진 백’으로 알려져 품귀가 이어진 프랑스 패션 브랜드 데스트리(DESTREE)가 국내 상륙했다.2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데스트리의 임시 팝업스토어가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3층에 문을 열었다. 데스트리가 국내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데스트리는 2016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신생 디자이너 브랜드다. 세계 최대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아르노 회장의 셋째 며느리인 제럴드 구이엇과 당시 디올 임원이었던 레티시아 브로소가 공동 창업했다. 유명 모델 지젤 번천, 가수 비욘세와 리한나, 제시카 알바, 리즈 위더스푼 등이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에는 핸드백과 주얼리 제품 위주였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여성 의류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국내에 알려진 계기는 지난 2월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 정몽규 HDC그룹 회장 장남인 정준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다. 당시 이 사장은 ‘하객룩’으로 회색 케이프 코트를 갖춰 입고 데스트리의 ‘건터 파스망트리 백’을 양손에 들어 화제가 됐다. 명품 브랜드 가방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가방을 들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가방은 노끈을 둥글게 말아 만든 듯한 공예 작품이 가미된 검은색 가죽 백이다. ‘건터백’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엔 공식 매장이 없어 소비자들은 해외 직구로 이 가방을 구매해왔다.해당 제품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550유로(약 75만 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이번 팝업스토어 공식 판매 가격은 95만8000원이다. 데스트리 임시 매장은 다음 달까지 한정 운영된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전문기업 한섬이 데스트리 팝업 입점을 성사시켰다.업계에 따르면 매장 오픈 첫 날부터 ‘이부진백’을 찾는 소비자들이 줄이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예린 기자

More
경제 기사 리스트

society

정유정은 낯선 사람, 고유정은 최측근 살인…전문가가 본 차이점

정유정은 낯선 사람, 고유정은 최측근 살인…전문가가 본 차이점

과외 중개 애플리케이션으로 처음 만난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정유정(23)은 사회적인 성향이 일절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9년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유정(40)은 정유정에 비해 친족에 집착하는 사회적 성향을 조금이나마 가졌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고유정은 밀접한 사람에게 복수한다는 관점에서 살인했지만, 정유정은 낯선 사람을 선택해 접근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유정은 가족에 집착하는 등 사회적 동물이었다”면서 “그러나 정유정은 그런 욕구도 없는 비사회적 성향으로 고유정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정유정은 범죄 수사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얻은 정보로 미리 흉기를 준비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하지만 살해 이후에는 마트에서 세제와 비닐봉지를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가 여행용 가방 등 시신 유기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며 동선을 노출했다. 또 혈흔이 묻은 가방을 들고 택시에 타는 등 허술한 모습도 보였다.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정유정의 성향이 사이코패스와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매우 치밀하게 계획한다”며 “하지만 정유정의 범행에는 허점이 많고 일반적인 사이코패스 성향과는 안 맞기 때문에 단정하기 어렵다”며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전문가들은 정유정이 오랜 기간 사람과 단절돼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환경이 살인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경찰에 따르면 1999년생 정유정은 고등학교 졸업 후 약 5년간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할아버지와 지냈다.그는 직장 생활 대신 온라인에서 활동하면서 방송과 서적 등 범죄물에 빠져들었다. 범행 3개월 전부터는 인터넷에 ‘살인’ 관련 단어를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공 교수는 “정유정을 사이코패스로 몰아가기보다는 고립 생활을 겪었던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 나이에 비해 정신적 성장을 못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이예린 기자

More
사회 기사 리스트

international

‘우크라 지원 Top10’ 1위는 美…GDP 규모로는 불안한 이웃들 ‘최대 성의’

‘우크라 지원 Top10’ 1위는 美…GDP 규모로는 불안한 이웃들 ‘최대 성의’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후 우크라이나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전력(戰力)을 보강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무기 등의 지원을 호소해 왔다. 이에 호응한 서방 진영이 무기와 인도적 물자 등을 지원하는 데 핵심축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단일 국가로는 우크라이나에 가장 큰 규모의 지원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무너질 경우 러시아의 다음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안게 된 발트3국 역시 국세(國勢)에 비해 막대한 지원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우크라이나 매체 ‘뉴 보이스 오브 우크라이나’(NV)는 최근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올해 2월 24일까지 자국에 대해 이뤄진 타국의 지원 규모 1위부터 10위까지의 분석 결과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가장 큰 규모의 지원을 해온 것은 단연 미국이었다.미국은 이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에 대해 634억 달러(약 83조 원) 규모의 지원을 보내왔다. 미국이 지원한 규모는 2~9위 국가·지역의 지원 규모를 다 합친 471억 달러(약 62조 원)의 약 1.3배였다.미국의 뒤를 이어 우크라이나에 큰 지원을 보낸 곳은 유럽연합(EU)였다. EU는 같은 기간 회원국들로부터 모은 167억 달러(약 22조 원) 규모의 지원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3위인 영국의 지원 규모는 83억 달러(약 11조 원)였다. NV는 이들 외에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거론하지 않았지만 독일, 캐나다, 네덜란드, 폴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순으로 지원 규모가 컸다고 전했다.NV는 각국의 지원 성격도 분석했는데, 폴란드·노르웨이·스웨덴·영국 등은 군사적 지원에 주로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EU와 캐나다는 금융 지원에 방점을 뒀으며 독일과 프랑스는 인도적 지원을 강조해 왔다는 것이다.한편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 ‘Top 10’에 들지는 않았지만, 각국의 경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을 감안할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목도하고 있는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 역시 만만치 않은 지원을 보내며 성의를 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NV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라트비아는 이 기간 4억 달러(약 5230억 원)를 지원했으며 이는 자국 GDP의 1% 정도로, GDP 대비 우크라이나 지원액 규모가 가장 컸다.같은 기준으로 에스토니아는 GDP 대비 0.88%인 3억 달러(약 3923억 원)을 지원했으며 리투아니아는 GDP 대비 0.74%인 5억 달러(약 6539억 원)를 지원했다. GDP 대비 지원 규모로는 발트3국이 1~3위인 셈이다. 발트3국과 같이 이번 전쟁이 벌어진 지역 인근 국가인 폴란드와 체코도 해당 기준에서는 4위 및 5위였다. 같은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의 지원 규모는 자국 GDP의 0.27% 정도였다.NV는 이번 분석에 국제통화기금(IMF), 독일의 킬 세계경제연구소(Kiel IfW), NV와 협력하는 베트남 자산운용사 드래곤캐피탈의 산출자료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NV는 이번 보도에서 국가·지역별 지원 규모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대형 금융기관, 유명 스포츠클럽과 연예인, SNS 업체, 일반 개개인들의 지원을 거론하며 "모든 기여는 (우크라이나) 군대를 지원하는 전반적인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지만 그 정확한 가치를 따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impossible) 일"이라고 전했다.박준희 기자

More
국제 기사 리스트

culture

뾰족한 첨탑 대신 주변 산세와 조화… 서구 추종 벗어난 한국적 성미술

뾰족한 첨탑 대신 주변 산세와 조화… 서구 추종 벗어난 한국적 성미술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김종영(1915∼1982), 문학진(1924∼2019), 김세중(1928∼1986), 권순형(1929∼2017), 이남규(1931∼1993), 최종태(91), 이종상(85).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거장들이다. 이들 작품이 한곳에 있다고 하면, 미술관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곳은 다름 아닌 서울 혜화동성당이다. 낙산 자락에 있는 이 성당은 1927년 서울에서 가톨릭 성전으로 명동성당, 중림동성당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졌다. 1909년부터 이곳에 있던 베네딕도 수도원이 원산 덕원으로 이사 가자 수도원 목공소를 개조해 지었다. 1955년부터 5년간 신축 공사를 해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성당을 완성했다. 당시 신도로 있던 장발(1901∼2001) 서울대 미대 학장이 신축 작업 전반을 이끌었다고 한다.장 학장은 이 성당의 성미술(聖美術) 작업에 미대 제자들을 참여시켰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선구자로서 서울대 미대를 창설하고 후학들의 벗바리 역할을 했던 장 학장의 인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2공화국 수반이었던 장면(1899∼1966) 전 총리의 동생인 장 학장은 20대에 명동성당 12사도화를 그렸던 성미술 거장이었다. 그럼에도 혜화동성당 작업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서 제자들을 앞세운 것이다.혜화동성당은 한국 성미술 역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한국인 정서에 맞는 토착화 미술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우선 설계를 맡은 이희태(1925∼1981) 건축가는 우리나라 지형에 어울리는 모양을 지향했다. 서구 고딕 양식은 유럽처럼 평지가 많은 곳에 맞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 한국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건축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로 7개의 둥근 기둥이 받친 신전 모양의 성당이 탄생했다. 대형 부조 벽화 아래로 25개의 화강암 계단을 올라가야 입구로 들어설 수 있다.기존의 뾰족한 첨탑 양식 성당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새 성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성당이 과연 이래도 되나, 게정대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전국에 다양한 형태의 성전들이 들어서며 그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우리 정서에 맞게 토착화한 건축 효시로 인정받게 됐다.이 성당은 1990년대에 마당 대부분을 시의 도로 확장에 내놨다. 그 때문에 성(聖)과 속(俗)의 중간 지대가 없어져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그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역시 성당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성미술 걸작들이다.계단 위의 대형 부조 벽화는 ‘최후 심판도’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른손을 치켜든 모습 옆에 네 복음서(마르코, 요한, 마태오, 루가복음)를 상징하는 사자, 독수리, 천사, 황소를 새겨놨다. 부조의 선과 면이 굵고 단순해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장발의 주도로 김세중이 원도(原圖) 만들고, 송영수(1930∼1970)와 최만린(1935∼2020)이 협력해 흙으로 빚었다. 그 후 김세중과 장기은(1922∼1961) 작가가 조각했다.장발의 제자였던 김세중은 광화문광장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작가로 유명하다. 아내인 김남조(95) 시인과 함께 가톨릭 신도였던 그는 이 성당의 여러 곳에 작품을 통해 신심을 새겼다. 성베네딕도상(화강석), 제대(대리석), 십자고상(화강석)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제단 아래쪽 왼편 벽감에 있는 성모자상(시멘트)도 그의 작품이다. 이 성당의 세 묘원(墓園) 중 하나인 경기 포천 묘원의 장면 전 총리 묘역에 설치돼 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지형 변화 등의 이유로 방치돼 있던 것을 2017년에 홍기범 당시 주임신부가 발굴해 본당에 모셨다고 한다.성당 안에 들어서면, 예수 부활상이 얹혀 있는 성수대(聖水臺·아래 작은 사진)를 바로 만나게 된다. 5만 원권 화폐의 신사임당 영정을 그린 이종상 작가가 암적색 화강석 좌대를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그 위에 임영선(64) 작가의 부활상(황동)이 자리했다. 부활한 그리스도 상반신을 상하로 가늘게 과장한 성상은 못 자국이 있는 두 손을 크게 강조했다. 신도들이 자기 손을 하도 많이 얹어서 못 자국이 닳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앞에 서면 하릴없이 손을 얹게 된다.문학진의 ‘103위 순교성인화’, 권순형의 도자벽화, 김종영의 성수반(聖水盤), 이남규의 유리화 등도 매혹적인 작품들이다. 제작 과정의 일화들이 모두 흥미로운데, 특히 ‘103위 순교성인화’는 그 사연을 작품 옆에 써놨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김대건 신부와 외국인 신부 자리를 바꿔놓게 된 이유다. 문학진 작가는 명동성당의 ‘79위 복자 성화도’를 참고했는데, 대부인 박갑성 당시 서강대 교수가 “외국인이 중앙에 있으면 주체성이 부족해 보인다”고 한 것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중앙의 외국인 자리와 김 신부 자리를 서로 바꾼 것이다.이에 대해 혜화동성당 도록은 “쿠데타라고 표현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고, 성미술에서 주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 하나의 큰 결실이었다”고 기록했다. ‘주체’라는 말이 북쪽 정치체제 탓에 오염돼버렸으나, 그 체제에 의해 탄압받았던 가톨릭의 작가들에 의해 남쪽의 한 성당에서 성스럽게 되살아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성당 마당에 있는 최종태 작가의 성모상과 요셉상도 ‘주체적’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행방 묘연 ‘韓 성모·순교 복자’바티칸 서고서 발견 ‘감격 귀환’이순신 영정 그린 장우성 비화타계 직전 김수환 추기경 세례서울 혜화동성당 뒤쪽에 자리한 가톨릭대 성신교정엔 주교관이 있다. 한국의 역대 추기경들이 퇴임 후 머무르는 곳인데, 성미술과 관련한 숨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대한민국 표준영정 제1호 충무공 이순신 영정을 그린 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 화백의 작품에 관한 것이다.장 화백은 1949년 바티칸 국제 성미술전에 한국 대표로 ‘한국의 성모와 순교 복자’ 3부작을 출품했다. 한복을 입은 성모와 성인상을 한국화풍으로 그린 것이었다. 작가는 30대에 제작한 이 그림에 애정이 깊었으나, 작품이 로마 교황청에 간 후로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1991년 자신의 화집에 넣고 싶어 바티칸까지 갔지만 찾을 수 없었다.그로부터 10년 후 바티칸 고문서 서고에서 일하던 한국인 사서가 우연히 발견했고, 최승룡 당시 한국교회사연구소장이 국내에 들여와 주교관에서 처음 공개했다. 장 화백은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옛 애인을 만난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때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후 주교관에 머무르고 있던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이 그 감격을 함께했다.장 화백은 성화 3부작뿐만 아니라 성미술 작품을 여러 점 제작했으나 가톨릭 신도는 아니었다. 서울대 미대 교수 동료였던 장발 작가 등이 영세를 받으라고 권유해도 계속 미뤘다고 한다. 그러다가 타계 전해인 2004년 신도인 딸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영세를 희망했다. 당시 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이었던 정웅모 신부가 장 화백 자택을 방문해 예비자 교리를 3번 받게 했다. 장 화백의 거동이 불편해 외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 추기경이 장 화백 집으로 직접 찾아가 세례 성사를 집전했다. 영세 현장에 함께 했던 정 신부는 “장 화백이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예술가는 아름다움의 추구를 통해 진선미의 원천인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More
문화 기사 리스트

people

“200년전 영국, 100년전 미국… 지금은 한국교회가 세계선교”

“200년전 영국, 100년전 미국… 지금은 한국교회가 세계선교”

“전 세계에서 한국 선교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곳에서 신실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어 늘 감동을 받습니다. 200년 전엔 영국 교회가, 100년 전에는 미국 교회가, 지금은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프랭클린 그래함(사진) 목사는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를 앞두고 방한했다. 빌리 그래함(1918∼2018) 목사의 아들인 그는 구호단체 ‘사마리안 퍼스’를 이끌며 기독교 복음 전파에 앞장서왔다. 미국 남침례교 목사였던 아버지에 이어 세계 기독교계에서 영향력이 큰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한반도가 6·25전쟁의 화염에 휩싸였을 때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50여만 명의 한국 성도들이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포기하십니까?” 이 한마디가 미국을 포함한 유엔 16개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기독교계 정설이다. 그가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펼친 전도집회는 세계 기독교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되고 있다. 그해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린 집회에 연인원 334만여 명이 모였으며, 마지막 날에만 110만 명이 참가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한국 교회는 부흥 가도를 달려 세계 기독교계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은 큰 변화가 있었고, 부유한 국가가 됐습니다. 서울은 세계적 도시이고, 한국은 기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과 기술을 갖고 있어도 그것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공간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 공간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이번 50주년 기념대회에서 하나님이 한국인을 특별히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상이 빨리 변하고 교회도 바뀌지만, 하나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범교단 행사로 펼쳐지는 이번 대회의 고문을 맡은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는 “제가 50년 전 대회에서 통역을 할 때가 39세였고 지금은 89세인데 죽지 않고 살아서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냐”라며 “앞으로 50년 후에도 대회가 열리길 바란다”고 했다.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 출신으로 미국 유학을 통해 목회자가 된 김 목사는 1973년 집회에서 설교 통역을 훌륭하게 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More
인물 기사 리스트

ADVERTISEMENT

서비스 준비중 입니다.
닫기